빨간색 기호, 노란색 별, 녹색 나무, 파란 파도 무늬가 있는 그림 요소.

ai에게 혼쭐난
구닥다리 편지 아저씨 이야기

구독자님께

안녕하세요, 로만덕입니다. 비가 그치고 오늘은 눈부신 날입니다. 플라타너스잎은 하얗게 빛나고 있습니다.
오늘만큼은 구름처럼 모든 것에 가볍게 스며들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잘 지내셨나요? 저는 여전히 편지를 붙잡고 있습니다. 남기지 않으면 금세 사라져 버리고 마는 마음들 때문에요.

3월만 해도 처음 가는 유치원에 안 가고 싶다고 투정 부리던 첫째 아들 녀석은 어느새 두발자전거를 자가용처럼 타고 등원하게 되었고, 둘째 아들 녀석은 돌 한 달을 남겨놓고 아파트 놀이터 미끄럼틀을 거꾸로 올라가고 있네요.

돌아보면 시간은 금방 가 있습니다. 바라볼 때면 한참 넉넉한 것처럼 느껴졌는데. 그래서 더 편지를 놓지 않으려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라도 이 시간들을 붙들지 않으면 제 손에 남은 것이 하나도 없을 것만 같아서요.

하지만 편지는 꽤 힘과 시간을 소모하는 일이긴 합니다. 잘 쓰고 싶어 몇 번을 썼다가 지우는지. 시간은 훌쩍 가버리고, 쓰다 만 편지만 쌓이고 있었죠.

2월 중순쯤이었을 겁니다. 바이브 코딩이라고, 말만 하면 ai가 찰떡같이 알아듣고 프로그램을 만들어준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이전에 프로그래밍 일을 하기도 했고, 간단한 수준이면 뚝딱 만들 수 있다길래 호기롭게 시작했죠.

목표는 손편지만큼 무겁지는 않더라도, 카톡처럼 가볍지는 않은, 일기장처럼 오래오래 보관되지만, 누군가와 주고받을 수도 있는. 그 사이의 어떤 무언가였습니다.

그렇게 시작했지만 몇 번을 헤매고, 고치고, 잘못 만들고, 갈아엎고… 말 몇 마디 하면 될 줄 알았는데, 천 번 정도 말해야 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물론, 이건 제 실력이 부족해서였겠습니다만. 흑흑)

칼은 뽑았으니 무라도 썰어야 했고, 석 달이 지나 이제서야 결과물 하나가 나왔네요. 편지쓰기 앱 하나 만들자고 석 달을 쓰게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결국 만들자마자 이렇게 밀린 편지를 씁니다. 구독자님에게 맨 먼저 이 소식을 전하고 싶었거든요.

이대로 사라지게 두기 아쉬운 마음들. 혹시 그것들을 붙잡고 싶으셨다면, 잠시 들러주셔도 좋을 듯합니다.

또한 “좋은” 것은 홀로 만들어질 수 없다는 걸 믿습니다. 이 도구는 언제나 구독자님의 이야기에 열려 있습니다. 불편한 점, 바꿨으면, 있었으면 좋겠는 것… 어떤 방식으로도 말씀해 주시면 최선을 다해 고쳐보겠습니다.

오직 우리가 더 쉽게 편지를 쓸 수 있도록, 오직 우리가 한 사람을 향해 더 자주 말할 수 있도록 말이죠.

누군가 제가 만든 걸 잘 써준다는 사실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생각해 봅니다.

더 더워지기 전에, 편지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늘 감사합니다.

26년 5월 22일

로만덕 드림

파란색 필기체로 작성된 'lolettern' 텍스트 로고.